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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원(昭寧園)은 영조의 친모인 숙빈 최씨(1670~1718)가 잠든 곳이다.

지정번호 : 사적 제358호
지정년도 : 1991년
소재지 : 경기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시대 : 조선 영조
크기 : 면적 31만 2279㎡

::::: 상세설명 :::::

조선시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친어머니인 숙빈 최씨의 묘소다.
숙빈 최씨는 일곱 살에 궁에 들어가 궁녀로서 생활하지만 궁중에서 청소, 설거지 등의 허드렛일을 하는 여자종인 무수리였다.
숙빈최씨는 7살에 부모을 여윈 고아였다고 한다.
서인을 대표하는 인현왕후가 폐비되고 남인을 대표하는 장희빈이 국모가 되던 시기에, 숙종은 어떤 정치세력과도 관계가 없는 숙빈 최씨를 만나게 되고, 숙종의 승은을 입은 숙빈 최씨는 연잉군(영조의 왕자시절 호칭)을 낳게 된다.
숙빈 최씨의 아들 영조은 이복형인 경종시절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어려웠던 험난했던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임금으로 즉위하게 된다.

영조는 임금이 되자마자 미천한 출신으로 마음고생이 많았을 어머니를 위해 소령원의 비문을 소령묘(昭寧墓)에서 소령원(昭寧園)으로 고치고 싶었지만, 후일을 기약하고 숙빈 해주최씨소령묘(淑嬪海州崔氏昭寧墓)라는 친필 비석을 세우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영조는 임금이 된지 29년이 지나서 다시 한번 소령원에 친필 비석을 세우게 된다. 어머니 숙빈 최씨에게 화경(和敬)이라는 시호(돌아가신 왕이나 왕비의 공덕을 기려서 붙인 이름)를 붙인 후 조선국화경숙빈소령원(朝鮮國和敬淑嬪昭寧園)이라는 친필 비문을 새긴 비석을 만들었다.

신도비에는 그녀가 해주 최씨 최효원의 여식이라 기록되어 있다.
우리 해주최씨 족보나, 혹은 영조실록, 승정원일기등 문헌에서는 숙빈최씨가 해주최씨(海州崔氏)라는 기록은 아무데도 없다.
우리 해주 최씨는 고려시대 최충을 비롯, 조선시대에 청백리 최만리를 배출해 낸 집안입니다.
만일, 숙빈최씨가 해주최씨였다면 사대부집안의 족보에 기록이 없을리가 없다.
숙빈최씨가 몰락한 가문의 후예였는지 아니면 성도 본관도 없었는데 후궁이 된 후에 만들어 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의 경우, 말기까지도 천인들에겐 성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영조의 외할아버지 최효원(해주최씨라고하는?)은 영조가 왕이 된 후에 영의정에 봉해지며,
서울의 진관외동에는 그의 신도비(2품이상의 관리나 왕족, 유명한 인물에게 세워지는 비석)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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