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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죽 최경창(1539∼1583)을 비롯한 해주최씨(海州崔氏)의 위패를 봉안(奉安)한 사당입니다.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구림마을

::::: 상세설명 :::::

구림에 처음 터를 잡을 때는 시조 최온의 19세손 최경창(崔慶昌 : 1539~1583)때 부터이다.
그는 이곳 부호였던 임구령의 사위가 되어 토지 일부를 상속받아 구림에서 살다가 파주의 본가에 가서 돌아가셨다.
그의 증손자 석징(碩徵 : 1604~1667)은 잦은 병탓으로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구림에 내려와 할아버지 재산을 관리하면서 본격적인 정착 토성의 기반을 이뤘다. 슬하에 운서(雲瑞)·구서(龜瑞)·인서(麟瑞)의 삼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운서는 1652(효종3)년 무과에 합격해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구림을 떠났다. 오늘날까지 구림에 살고 있는 해주최씨들은 구서와 인서의 후손들이다.
현재 구림리에는 70여호가 살고 있고 시조 최온으로부터 17세손이 뿌리내리고 있다.
해주최씨와 관련된 유물 유적으로는 동계사(洞溪祠)와 삼락제(三樂齊)가 있다.
전남 영암 구림리(鳩林里) 회사정(會社亭)은 구림대동계(鳩林大同契·1565년 창설)의 집회소이다.
이 계의 규약(契規約)은 면면히 이어온 호남의 대표적인 동약(洞約)이지만, 회사정은 한국전쟁으로 소실(燒失)되고 현 건물은 1985년에 복원(復元)했다.
구림리 동계사(東溪祠)는 고죽 최경창(1539∼1583)을 비롯한 해주최씨(海州崔氏)의 위패를 봉안(奉安)한 사당이다. 그 앞에 고죽 최경창시비(孤竹 崔慶昌詩碑)가 있다. 지방 출신 손곡 이달(蓀谷 李達·?~?),옥봉 백광훈(玉峰 白光勳·1537∼1582)과 함께 삼당파시인(三唐派詩人)인 고죽은 영암에서 출생하여 경성 객관(鏡城 客館)에서 졸(卒)했다. 이들은 시(詩)의 격조(格調)와 정서가 당대 시풍(唐代詩風)을 진작시킨 시인들로 한시사(漢詩史)에 기록되고 있다. 그들은 기득권(旣得權)을 가진 서울 상층인(上層人)에 대한 지방인의 불평과 반항을 당시풍(唐詩風)으로 표현했다.
시비(詩碑)에는 홍랑(洪娘)의 시와 이를 한역(漢譯)한 고죽 친필시(親筆詩)를 새겼다.
'버들가지 꺾어(절양류·折楊柳)/
천리 머나먼 님에게 부치오니(기여천리인·寄與千里人)/
뜰 앞에 심어두고 나인가 여기소서(위아시향정전종·爲我試向庭前種)/
하룻밤 지나면 새 잎 돋아나리니(수지일야신생엽·須知一夜新生葉)/
초췌한 얼굴 시름 쌓인 눈썹은 이내 몸인가 알아주소서(초췌수미시첩신·憔悴愁眉是妾身)'.
그는 도학자(道學者)의 모습보다는 풍류객 기질(風流客 氣質)을 지녀 북도평사(北道評事) 시절 군막(軍幕) 속에서도 세인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홍랑과 지냈다. 그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접한 홍랑은 칠주야(七晝夜)를 걸어가 간병(看病)했다.
고죽에 대한 그녀의 성심(誠心)으로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다율리의 남녀 무덤 2기와 묘역에는 '고죽과 홍랑시비'가 나란히 세워지게 되었다.
고죽 후손(後孫)들은 '홍랑할머니'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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