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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귀법사(開城 歸法寺)는 이북에 있는 관계로 사진은 찾을 수가 없다.

::::: 상세설명 :::::

개성 귀법사(開城 歸法寺)는 고려 4대왕인 광종이 963년에 창건하였다.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가 화담기(花潭記)에 말하기를『화담(花潭)은 곧 귀법사(歸法寺)의 옛터이다.
시내 위에 돌기둥이 물위로 아직도 솟아 있으니 이곳이 바로 최 충(崔)이 더위를 피하여 놀던 곳이다』하였다.
고려사절요 제 5권에는,
"충은 해주 대녕군(大寧郡) 사람인데, 풍채가 훌륭하고 성품과 행실이 곧고 굳으며,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글을 잘 지었다. 목종조에 갑과 1등으로 뽑혀서 4대의 조정을 거치며 벼슬하였고, 자질이 문무를 겸하여서 나가서는 장수로 들어와서는 정승이 되었다가 나이 70세에 이르러서 물러나기를 청하니, 왕이 그의 뜻을 어기기 어려워 특별히 윤허하였으나, 군사상 큰 일은 모두 자문하였다.
여러 차례로 추충(推忠)ㆍ찬도(贊道)ㆍ좌리(佐理)ㆍ동덕(同德)ㆍ홍문(弘文)ㆍ의유(懿儒)ㆍ보정(保定)ㆍ강제(康濟)라는 공신의 호칭을 더해주었다. 현종이 중흥한 뒤로 전쟁이 겨우 멈추어 문교(文敎)에 겨를이 없었는데, 충이 후진들을 불러 모아서 가르치기를 부지런히 하니, 여러 학생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드디어 낙성(樂聖)ㆍ대중(大中)ㆍ성명(誠明)ㆍ경업(敬業)ㆍ조도(造道)ㆍ솔성(率性)ㆍ진덕(進德)ㆍ대화(大和)ㆍ대빙(待聘)이라는 9재(齋)로 나누었는데, 시중최공도(侍中崔公徒)라고 일렀으며, 무릇 과거를 보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도(徒)에 들어가서 배웠다.
해마다 더운 철이면 귀법사(歸法寺)의 승방(僧房)을 빌려서 여름 공부[夏課]를 하며, 도 가운데 급제한 자로 학문은 우수하면서 벼슬하지 않은 자를 골라 교도(敎導)로 삼아 구경(九經)과 삼사(三史)를 가르치게 하였다. 간혹 선진(先進 먼저 과거에 오른 사람)이 오면 촛불에 금을 그어 시한을 정하고 시를 짓게 하여 글의 등급 차례로 이름을 불러들여서 작은 술자리를 베푸는데, 아이와 어른이 좌우에 벌여 서서 술과 안주를 받들어 진퇴의 예의가 있으며, 장유(長幼)의 질서가 있어 종일토록 수작하니, 보는 자가 아름답게 여기고 찬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때에 와서 충이 졸하니, 태의감(太醫監) 이염(李鹽)에게 조서를 가지고 가게 하여서 조위(弔慰)하고 시호를 문헌(文憲)이라 하였으며, 정종의 묘정에 배향하였다. 그 뒤에도 과거를 보려는 사람이 모두 9재에 적(籍)을 두니, 문헌공도(文憲公徒)라고 하였다. 또 유신(儒臣) 중에 도(徒)를 둔 자가 11명이 있어 세상에서 12도라고 일컬었으나 충의 도가 가장 성하였다. 동방에 학교가 일어난 것은 대개 최충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당시에 그를 해동공자(海東孔子)라고 하였다."
또 개성 고적(開城 古跡)에 이르기를,
『삼수동(三水洞)의 샘과 돌이 사랑스러운데 거기에는 두 개의 돌 구 유통이 있다.
이것은 문헌공(文憲公 : 崔冲)께서 여름 공부를 하시며 놀던 곳이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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